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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자녀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그래서 동반자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이다. 매달 3건가량 꾸준히 벌어지는 이 비극은 특정 가족의 불행이 결코 아니다. 경제·사회적 고립과 절망, 구조하지 못한 사회의 실패다. 5회에 걸쳐 외면해서는 안 될 이 비극의 현실을 추적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인공지능이 그린 김은영씨와 자녀들의 모습. 은영씨 뒤로 뜯지 않은 택배 박스가 쌓여 있다. 삽화=한소범 기자·미드저니


늦여름 밤, 휴대폰 진동 소리가 정적을 깼다. 진동은 미세했지만, 김은영(40)씨는 숨을 죄었다. 대바다이야기5만
부업체는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두 달 넘도록 전화를 해왔다. 매일 10통 이상. 전화를 받아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궁색했고, 그래서 곤혹스러웠다.
딱 500만 원이었다. 몇 년 전부터 민서와 동현의 육아용품을 하나둘 사들였다. 남부끄럽지 않게 키우겠다는 헛된 마음, 그래서 무리를 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는 부족했고, 철없이 카드를온라인 릴게임 사이트
긁었다. 감당도 못할 거면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다시 임신을 했고, 아이를 잃었다. 두 번째 유산에 일을 그만뒀다. 허전함은 쇼핑으로 채웠다. 카드값은 돌려막기를 해도 안 됐다. 그렇게 대부업체를 찾았다.
빚은 야금야금 불어났다. 또래보다 발달이 느린 민서는 병원과 언어치료 교실을 다녀야 했다. 바다이야기 pc용
운동을 가르치고, 교구와 책을 사야 했다. 주말부부였던 남편은 집에 올 때마다 "돈을 왜 이렇게 많이 쓰냐"고 다그쳤다. 남편은 몰랐다. 인터넷에서 불길한 키워드를 검색한 건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셋째 민아를 낳았다. 대부업체 전화는 민아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돈 안 갚으면 집으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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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벌어졌다. 은영씨는 해서는 안 될,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저질렀다. 몽롱한 정신에 민아가 깨어나 우는 모습을 봤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119를 불렀다. 법원은 은영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 판결문에는 사건의 전말이 빼곡히 담겼다.
은영씨를 상담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는 범행의 원인을바다이야기게임
'우울감'으로 봤다. "출산과 유산을 반복하면서 상실감이 큰 상태였어요. 독박육아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였고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은영씨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물건을 과하게 사기 시작했는데, 그가 왜 물건을 사는지 관심을 가졌던 가족은 없었어요. 은영씨가 보내는 위험신호였는데 말이죠."
반면 법원은 자녀 양육 과정에서 빚어진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꼽았다. 같은 사건에 다른 진단이었다.

공격성과 거리는 멀다지만...자녀 살해 범죄에선 최대 위험 요인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최근 12년(2014~2025년 7월) 사이 발생한 자녀 살해 후 자살·미수 사건 가운데 형이 확정된 138건의 판결문(1심·항소심 포함)을 심층 분석한 결과, 전체 가해 부모 143명 중 43%(62명)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단순 스트레스 호소는 제외하고, 재판부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거나, 정신질환과 범행의 관련성을 명시적으로 기술한 경우다.
가해 부모가 앓았던 정신질환은 우울증(53건·중복집계)이 가장 많았다. 공황장애(7건),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4건), 망상장애(3건), 조현병(3건) 등의 순이다. 두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복합적으로 앓는 경우(13건)도 있었다. 우울증은 본래 타인에 대한 공격성과 거리가 먼 질환이다. 하지만 증세가 악화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자해 충동과 자살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권준수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해 부모는 자녀를 살해하는 행위를 일종의 '심리적 자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 즉 분신처럼 여기기 때문에 자녀의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빼앗을 권리가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할 위험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직, 파산, 질병 등 복합 위기가 방아쇠로
우울하다고 모두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주목할 건 가해 부모 사이에서 관찰되는 공통된 패턴이다. ①실직, 빚 독촉, 파산, 질병 등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사회적 좌절이 반복될 때 ②부모의 정신건강 위기가 커지면서 자살 위험성이 높아지고, 아이들이 위기에 노출되는 식이다.
유치원생 희주(5)를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했던 이정연(30대)씨가 그런 경우다. 정연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면서 형편이 넉넉하진 않더라도 궁핍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좌절은 정연씨가 암 진단을 받고 희주가 지적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생활이 팍팍해졌다. 애당초 완치가 힘든 병이었다. 우울한 마음을 다잡으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정연씨는 어린시절 가족의 자살을 경험하며 괴로웠던 경험이 있었다. 치료비를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더 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정연씨는 범행을 저질렀다. 재판 과정에서 정연씨의 정신을 감정했던 의사는 "(범행 후에도) 자살 시도를 반복하는 등 자살 위험성이 매우 높았다"고 기억했다.
이영문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인간은 누구나 우울할 수 있기 때문에 우울감 자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금전적 문제처럼 경제적 압력이 가해졌거나 사회적인 명예가 추락하는 등 복합적인 위기가 방아쇠가 되면서 자살 시도율은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 범죄 특성 분석. 그래픽=김대훈 기자



여성은 가정 해체, 돌봄 부담, 상실감으로 좌절
성별에 따른 차이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③가정 해체로 인한 상실감, 경제적 문제와 돌봄부담이 정신건강의 위기로 번진 여성 가해자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판결문을 분석하면, 친부모 가정(99건) 셋 중 하나(34건)꼴로 가정불화를 겪거나 별거,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법적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한쪽 부모에게로 양육 부담이 쏠려 있었다는 뜻이다.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앓았던 가해 부모도 여성(52명)이 남성(9명)을 압도했다. 관련 문제를 연구했던 최진화 서원대 상담심리학 교수는 "여성 가해자는 겉으로 드러난 가정폭력보다 배우자의 양육 미참여, 경력 단절, 산후우울증 등으로 상실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자녀 살해 후 범죄를 예방하려면 부모의 우울로 인한 위기 개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봤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의 남성 가해자 특성을 분석하면, 평소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우울함을 많이 느껴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은 비중은 매우 낮았다. 삽화=한소범 기자·미드저니



남성은 경제적·사회적 지위 상실 때 좌절
반면 ④남성 가해자는 갑작스러운 경제적·사회적 몰락에 취약했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자녀 살해 후 자살 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경향을 보였다. 남성 가해자(50명) 중 절반 이상(29명·58%)의 범행 원인이 경제난으로 분류됐는데 사업, 주식, 부동산 투자 등에 실패해 갑작스러운 빚을 지게 된 경우가 많았다.
아내와 사별한 후 자녀를 홀로 양육하던 박태우(48)씨가 그랬다. 태우씨의 방황은 20여 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시작됐다. 주식투자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서 빚을 얻었다. 손실금을 메우려 노부모에게 돈을 빌리고, 대출을 받아 투자해 실패하는 일이 반복됐다. 집이 은행에 넘어가는 절차만 남았을 때, 태우씨는 범죄를 저질렀다.
태우씨를 조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나이도 한창인데 개인파산·회생을 신청하고 투잡을 뛰면 재기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더니 아내와 사별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어려움이 많다는 말만 했다"면서 "본인이 죽고 싶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고 기억했다. 태우씨는 투자 실패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면서도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홍영오 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란 아버지는 가족은 내가 이끌어야 하고 가족 부양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긴다"면서 "사회 안전망의 도움을 받으면 무능한 가장, 무능한 부모라고 낙인찍힐까 봐 수치스러워한다"고 분석했다.
가해 부모들은 공통적으로 ⑤사회 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강했다. 채무에 허덕이던 태우씨는 범행 전에 법원의 개인 도산 화상상담 서비스도 이용하지 않았고, 중장년에게 재취업 정보를 알려주는 내일센터도 찾아가지 않았다. 지역사회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등에도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범행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태우씨 자녀들이 아동복지시설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거부했다.

범죄 예방하려면 위기 부모 '정신건강 관심' 필요
자녀 살해 후 자살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다. 그래서 범죄를 예방하려면, 부모의 정신건강 위기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형태의 범죄는 사회적·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워졌거나 정신건강 위기가 있는 가정을 사회가 구조하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이 원인"이라며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축소해 보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동우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치료 문턱을 낮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동시에 난임우울증센터 등을 활용해 부모 양육에 대한 교육도 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엑설런스랩 기획유닛팀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범죄 수법의 묘사를 최소화하는 대신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심리와 회복 과정에 초점을 뒀다. 사건에 관련된 가족들의 신원 보호, 피해 아동들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 등을 감안해 등장 인물들 이름을 가명 처리했다. 물론 등장 전문가는 모두 실명이다.

팀장= 김동욱 기자
취재= 김지현·한소범 기자, 백혜진 인턴기자

<글 싣는 순서>
① 참회의 눈물
② 두 번의 버림
③ 벼랑 끝, 비극
④ 처벌과 용서 사이
⑤ 상처를 넘어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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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① 참회의 눈물


? 3건 중 1건은 아이만 죽었다...자녀 살해 후 자살 260건, 분석 결과 모두 공개합니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110300003636)
? 자녀 살해, 사망 아동이 7명?...국가도 모르는 '숨은 죽음' 2배 더 있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116550005046)
? 시청의 통보…자녀 살해 후 자살 가정에 "치료비 4천만 원 갚아라"(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713520005534)
? 남편 잃고 7년 버틴 엄마...내가 내 아이를 죽이려 했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113370004609)
? 자녀 살해 후 자살, 대체 왜? 막을 순 없었나?...기록 너머 현실을 들여다보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817010003426)




② 두 번의 버림


? 부모에게서 살아남은 132명...그중 78명, 국가는 행방조차 모른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17140005515)
? 자녀 살해, 아동학대 범죄로 못 박아야 아이들 지킬 수 있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211310000623)
? '위험한 양육자'의 아동 학대...학교 병원 복지센터 누구도 나서 주지 않았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115520004174)
? 아동학대 의심스러운데 신고 머뭇거리는 이유...“보복 두려워”(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3116020003114)




③ 벼랑 끝, 비극


?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심리적 자해...사회적 좌절이 정신건강 위기와 만날 때 '폭발'(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822450000084)
? 자녀 살해 후 자살 사전에 막으려면...부모의 정신 건강?관리부터(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116070001166)
? 우리가 외면했을 뿐...엄마는 발달장애 아들과 늘 벼랑 끝에서 울고 있었다(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82914410002081)
? 위기가구 발굴로 부족한 자녀 살해 후 자살 대책...복지 문턱부터 낮춰야(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021437000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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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자살예방 보도준칙을 준수합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백혜진 인턴 기자 bhj82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