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는 돈이 곧 왕이다. 돈을 벌어들인 감독은 왕의 대우를 받는다. 과거 조지 루카스가 그랬고, 비교적 가까운 현재에는 지난 17일 개봉한 <아바타: 불과 재>의 제임스 카메론이 그렇다. 루카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순서상 4, 5, 6편, 1977~1983)로 우리 돈 9조를 벌어들였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1편과 2편인 <아바타: 물의 길>로 약 54억 달러 (각각 30억 달러, 24억 달러) 이상을, 우리 돈으로 약 8조를 벌어들였다. 이 정도면 무소불위이다. 어떤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든, 길이가 어떻든, 장르 혼합을 어떻게 하든 그 누구도 터치할 수 없다. 제임스 카메론은 현재 사이다쿨 할리우드에서 ‘언터처블’이다. 이번 영화 <아바타: 불과 재>가 무려 197분짜리 대작인 이유이다. 만약 그가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은 위태위태한 감독이었다면 그 어떤 제작자도 이런 러닝타임의 영화를 만들도록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극장 회전율이 나오지 않는다. 하루 극장 회차를 아무리 많아야 3회밖에 잡지 못한다. 이게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까. 할 골드몽 리우드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번 3편의 제작비는 4억 달러이다. 약 6천억 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흥행 트렌드는 그걸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으리라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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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아바타>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의 원대한 이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의 SF적 미래관 오징어릴게임 , 인간 유전자의 변이, 새로운 생태계의 발견과 보존, 인류 유산의 새로운 시작 등을 집대성했다. 그러나 핵심은 그보다는 다소 복고적이다. 그간의 미-제국주의의 발흥,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기이하게도 특히 이번 <아바타: 불과 재>를 보고 있으면 아주 멀게는 1960년 오드리 헵번이 나왔던 존 휴스턴 감독의 <언포기븐>이 떠오른다. 그보다는 가까운 작품인 케빈 코스트너 감독·주연의 <늑대와 춤을>(1990)과는 아예 판박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미국 백인 사회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건국 과정에서 네이티브 아메리칸, 곧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대량 학살이 저질러진 것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갖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동화돼 같이 살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늑대와 춤을>에서 던바 중위(케빈 코스트너)는 자연과 어우러진 수우족의 삶에 매료되고 부족 여성 ‘주먹쥐고 일어서’(메리 맥도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결국 이름도 ‘늑대와 춤을’로 바꾸고 자신의 정체성을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바꾼다. 그러나 백인 기병대는 수우족뿐 아니라 원주민 전체의 삶을 파괴하려 하고 ‘늑대와 춤을’은 부족의 새로운 리더가 되어 이들과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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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던바 중위의 서사가 펼쳐졌던 공간을 우주의 판도라 행성으로 바꿨을 뿐 나비족에 동화되는 주인공 제이크(샘 워딩턴)의 얘기는 <늑대와 춤을>과 같다. 던바가 여인 ‘주먹쥐고 일어서’를 만났듯이 제이크도 나비족 여인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던바 중위가 명마인 시스코를 타고 다니며 주변을 맴도는 늑대 ‘하얀발’을 통해 서부의 황량한 자연과 교감하고 지배하듯이 <아바타>의 주인공 제이크 역시 인간과 나비족의 유전자를 합성해 만든 인공 육체 ‘아바타’를 조종하면서 판도라에 서식하는 토르크(거대한 크기의 포식자 익룡)를 타고 다닌다. 그는 나비족들에게 토르크 막토(토르크를 타고 다니는 자)란 칭호를 얻으며 지도자로 부상한다. 던바가 북군 수색대 출신이었지만 원주민 편에서 싸우듯 제이크, 곧 토르크 막토 또한 지구에서 파견돼 나온 RDA(Resources Development Administration)의 군대 조직과 대혈투를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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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가 갖는 시의성도 나름 만만치가 않다. RDA가 행성 판도라에 온 이유는 최첨단 산업 전반에 이용되는 초전도체의 원료인 언옵테늄이라는 광물을 채굴하기 위해서다. 이걸 위해 RDA는 나비족을 그들의 생존 기반인 영혼의 나무(Tree of Souls)에서 떼어 내 소개(疏開)시키려는 군사 작전을 펼친다. 언옵테늄이 바로 이 영혼의 나무에서 생성되었던 것. 영화의 언옵테늄은 최근 디지털 산업 개발 시대에 있어 절대적 원료라는 희토류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 나오는 지구의 군산복합체사령부 RDA의 침략은 디지털 원재료를 놓고 경제 봉쇄와 군사 제재 및 갈등을 벌이는 현재의 강대국 외교를 생각나게 한다. 따라서 제임스 카메론이 그리는 우주 전쟁 아닌 우주 전쟁은 어쩌면 신제국주의 체제로 가고 있는 현 세계 질서를 은유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제임스 카메론이 경고하고 있는 것은 과거 백인들이 미국 땅에 저지른 원주민 대학살처럼 다가오는 우주 시대에 있어 또다시 패권주의의 폐해를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바타> 시리즈 전체의 세계관은 반전 평화를 지향하며 자원의 집중이나 독점적 권한 행사보다는 경제적 분권과 민주적 배분에 맞춰져 있다. <아바타>의 속내를 다소 확대해석하면, 결국 반트럼프 주의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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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아바타: 불과 재>의 이야기는 2편 <아바타: 물의 길>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나비족 부부의 큰아들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의 죽음 직후부터 시작된다. 제이크?네이티리 부부, 특히 엄마인 네이티리는 상심에 젖어 있고 모든 것에 대해 의지를 상실한 상태이다. 제이크는 남은 아들 로아크(브리튼 달튼), 두 딸 키리(디지털 기술로 젊어진 시고니 위버가 연기)와 투크(트리니티 블리스)를 보살피며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 애쓴다. 지구인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는 거의 양아들처럼 키운다. 양아들 스파이더는 제이크에게 양날의 검이다. 스파이더는 제이크의 정적이자 지구 사령부 RDA의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의 친아들이다.
쿼리치는 스파이더를 찾기 위해 나비족을 상대로 무자비한 공격을 이어간다. 스파이더는 판도라 행성에 적응한 지구 인간이기에 RDA 역시 이 아이의 유전자를 확보하려고 혈안이 돼 있는 상태이다. 쿼리치 대령은 이미 한번 죽었지만, 배양한 나비족 신체에 미리 보존해둔 인간의 의식을 탑재한 ‘리컴비넌트(리컴)’로 부활한 후 더욱 강력해진 상태다. 제이크는 내부의 적과도 맞서 싸워야 하는데 환각 주술을 행사하는 망크완 부족의 사악한 지도자 바랑(우나 채플린. 찰리 채플린의 친손녀)의 적대적 공격에 맞서야 한다. 제이크는 일찌감치 본래 소속되었던 오마티카야 부족을 떠나 바다의 나비족인 멧카이나 부족과 살고 있지만 쿼리치, RDA 함선, 바랑의 대대적 공격에 맞서 다시 한번 토르크 막토가 돼 멧카이나 부족뿐 아니라 오마티카야 부족까지 모두 소집령을 내리고 대결전에 나서게 된다.
아바타 3편은 이 전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2편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서사이긴 하지만 1편을 보지 않고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2029년에 <아바타4>, 2031년에는 <아바타5>의 제작이 계획돼 있다고 하니 스토리는 더욱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질 것이다. 결국 1, 2, 3편에 이어 프리퀄 4, 5, 6편 그래서 순서상으로는 4, 5, 6, 1, 2, 3의 시리즈가 됐던 <스타워즈>의 위업을 이어가려 하는 욕망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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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 불과 재>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복잡한 척, 사실 <아바타> 시리즈의 속내는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 JFK의 뉴 프런티어, 레이건식 군산복합체의 시대를 섞고 흔든 카메론식 미국 역사의 기록이다. 그건 어쩌면 미국 현대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던 D.W.그리피스가 인종차별의 얼룩을 지닌 채 역사를 왜곡했던 것에 대해 자신이 미국사를 새롭게 기술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 있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임 킹 오브 더 월드(<타이타닉>의 대사)’를 넘어 영화의 아버지, 영화 역사와 미국 역사의 아버지가 되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제임스 카메론이 만들어 낸 <아바타> 세계관의 핵심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