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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멎는 듯했어요. 공개 처형 때 봤던 총알이 이번에는 저를 향해 날아오니까 아, 끝났구나.”
2011년 3월, 17세의 나이에 홀로 두만강을 건너 한국에 온 탈북민 한송미 씨(31)는 지난 1일 뉴스1TV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한 씨는 목숨을 건 탈북 끝에 한국에 정착해 현재 북한인권단체 ‘프리덤 스피커즈 인터내셔널(FSI)’ 소속 인권 운동가이자 작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지배한 세뇌…강제로 마주한 두 번의 공개처형
북한 함경남도 금야에서 태어난 한 씨의 기억 속 어린 시절은 ‘사상 교육’이 짙게 남아 있다. 그는 “어릴 적 부르던 노래마다 김일성·김정 새마을금고 금리조회 일·김정은 이름이 들어갔다”며 “집마다 걸린 초상화를 마주칠 땐 ‘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김정일에 대해서는 “새벽이슬을 밟으며 인민을 위해 현지지도를 다니신다고 배웠다”면서 “그 땐 그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고 밝혔다. 두렵고 끔찍한 세뇌였지만 돌이켜 보니 당시에는 ‘당연한 진리’로 받아 부산파산면책 들였던 것이다.
한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생활총화’였다. ‘생활총화’란 북한 주민들이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자기비판을 하고, 타인을 지목해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집단 회의다. 비판할 거리가 없어도 반드시 과오를 찾아내 공개적으로 질책해야 한다. 그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가는지 늘 조심해야 대학생의 하루 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 강제로 목격해야 했던 두 번의 ‘공개처형’도 여전히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그는 십자형 기둥에 묶여 안대를 쓰고 자갈을 입에 문 사람이 군인들의 일제 사격에 쓰러지는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한 씨는 “그런 장면 앞에서도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 한다”며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정적만 흘렀다 반환 ”고 반추했다.
그리움과 배신감…탈북을 결심한 17세 소녀
한 씨가 탈북을 결심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가 탈북하기 6년 전 어머니는 먼저 북한을 떠났고, 한 씨는 이모와 이모부 집에 얹혀살며 집안일과 농사를 도맡아야 했다. 동생들과 달리 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채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1주택자도 디딤돌 대출 을 이어가면서 “여기서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졌다”고 했다.
탈북을 실행에 옮기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이모 부부의 대화였다. 이모와 이모부는 그가 떠나면 어머니가 돈을 보내지 않게 될까봐 걱정했고, 그는 그 순간 자신이 그동안 가족이 아닌 일꾼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한동안 한 씨는 브로커를 따라가면 중국에 팔려가 장기매매까지 당할 수 있다는 이모 부부의 협박에 세 차례 탈북 제안을 거절했지만, 결국 17세의 나이에 자신의 의지로 탈북의 길에 오르게 됐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총알 뚫고 달린 두만강 탈출
어렵게 오른 탈북 길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였다. 어머니가 마련해준 브로커 비용 일부가 북한 측에서 가로채이면서, 계획된 안전한 길 대신 군인과 밀수꾼이 오가는 위험한 경로를 택해야 했다.
강을 건너던 새벽, 군견 두 마리와 총을 든 군인들이 추격해왔다. 한 씨는 중국 쪽을 향해 무작정 뛸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혹시 잡히면 자살하겠다는 각오로 어머니가 생전에 선물해준 작은 칼을 옷 속에 품고 있었다.
3월 19일, 따뜻해진 날씨에 얼음은 군데군데 녹아 있었다. 그는 “발밑에서 얼음이 쩍쩍 갈라지며 몸이 빠졌는데 나도 모르게 얼음을 붙잡았다”고 설명했다. 본능적으로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달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한 발 한 발이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었다.
이내 북한군의 총성이 산속에 메아리처럼 퍼졌고, 그는 “공개 처형에서만 보던 총알이 이번엔 나를 향해 날아왔다”며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총알을 피해 한참을 숨죽여 숨어 있던 한 씨는 “그냥 총에 맞으면 맞지, 이제는 뛰는 수밖에 없다”며 산 쪽으로 달려 몸을 숨겼다고 설명했다. 산꼭대기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숨을 쉴 수 있었다.
한 씨는 “강만 건너면 엄마를 볼 줄 알았는데, 중국에 도착했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었다”며 “북한 보위부가 중국에서 탈북민을 잡으러 다니고 있고, 붙잡힐 경우 중국에 ‘돈 벌러 왔다’고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민이 중국에서 붙잡히면 목적지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고, 한국행으로 드러날 경우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다”고 설명했다.
생사를 건 두만강 탈출부터 탈북을 결심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어린 시절 그가 겪었던 북한 사회의 현실은 한 씨의 증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한국 정착 과정과 이후의 삶은 2편에서 이어진다.
yoonzz@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