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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잊고 싶은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받지만, 또 누군가에겐 위로받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년)는 이런 삶의 단면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고단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며 사는 두 주인공 박동훈(이선균 분)과 이지안(이지은 분) 그리고 따뜻한 후계동 이웃들. 차갑고 메마른 도시 풍경과 달리 인물들 사이엔 인간적인 온기가 오간다.
동훈은 건설회사 삼안E&C 부장으로 겉으로 보기엔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변호사인 아내와 유학 간 아들, 잘 풀리진 않았지만 사이가 끈끈한 형제들과 어머니까지. 하지만 그는 회사 대표이사와 아내가 불륜 관계임을 알게 되고, 설상가상 대표의 계략으로 회사 8호선 별내역 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같은 회사 파견직 직원인 지안은 가난한 형편에 홀로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늘 빚쟁이의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며 힘든 나날을 버텨낸다. 동훈이 지안을 직원으로 채용한 이유는 ‘달리기’ 한줄뿐인 이력서에서 지안의 내력을 읽었기 때문이다.



“모든 건물은 통신연체자휴대폰개통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몰라. (중략)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 소상공인대출서류 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이런저런 스펙 줄줄이 나열된 이력서보다 달리기 하나 달랑 써 있는 이력서가 훨씬 세 보였나 보지.”



“밥 좀 사주죠”라는 지안의 짧은 말에 동훈은 동네 작은 주점에서 ‘스지찜’을 사준다. 별말 없이 젓가락으로 스지를 경춘석 먹다 배가 부를 때쯤 “나라도 그랬을 거야”라며 서로 담담한 위로를 전한다. 지안에게 동훈은 불쌍해서 한두번 도와주던 이들과는 달리 진심으로 ‘나의 편’이 돼준 어른이었다.
대화가 오간 식탁 위에 놓인 스지찜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사실 드라마에선 그 음식이 소의 특수부위라고 가늠될 뿐 정확한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동네의 작은 우리은행프리워크아웃 주점에서 판다는 점, 투명하고 쫄깃한 모양과 먹는 방법을 보아 스지찜으로 짐작된다. 스지는 소 힘줄(筋)의 일본어 발음이다. 소의 사태에 붙어 있는 질긴 힘줄(인대)을 부들부들 삶아 조림·탕·찜 등으로 요리해 먹는다. 오랜 시간 푹 삶으면 살코기와는 달리 특유의 몰캉하고 쫀득한 식감이 매력적이다. 흔히 도가니와 혼동하는데, 도가니는 소의 무릎 관절을 감싸는 연골과 힘줄이 섞인 부위다. 스지보다 더 두껍고 식감이 쫀득해 탕이나 수육으로 즐긴다. 특히 도가니는 뒷다리 관절에서만 나오는 귀한 부위라 수십년 전통의 설렁탕집처럼 오래되고 규모 있는 식당에서 주로 취급한다.
낮과 밤 일교차가 큰 요즘.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에야 불이 켜지는 작은 주점에서 김이 폴폴 나는 스지찜을 먹으면 하루의 피로가 풀릴 것만 같다. 평일 저녁 퇴근길에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골목에 있는 ‘ㅁㅅ(미음시옷) 주점’을 찾았다.
“동네 조용한 술집이에요. 해가 지기 시작하면 혼자나 소수 인원으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에요. 간단한 안주에 술 한잔 기울이면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 연인들의 여행 계획, 친구의 근황처럼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죠. 단골손님들은 자기 이야기를 저한테도 하면서 가까워지곤 해요.”
10년 넘게 양식 요리를 해온 최민수 사장은 2년 전에 주점을 시작하면서 즐겨 먹던 스지찜을 메뉴에 올렸다.
“안 나가면 내가 먹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는데, 따뜻하고 칼칼해서 주당들에겐 인기가 좋더라고요. 스지찜이 보기보다 손이 많이 가는 요리예요. 핏물을 뺀 스지를 두번 데쳐 불순물을 없애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손질하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6시간은 족히 걸려요. 육수도 사골에 채수까지 따로 만들죠.”



서울 강북구 수유동 ‘ㅁㅅ(미음시옷) 주점’의 스지찜. 쫀득한 스지를 국물에 적셔 촉촉하게 먹는다. 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뜨겁게 달궈진 무쇠 프라이팬에 국물이 자작하게 담긴 스지찜이 나온다. 고추와 대파도 함께 곁들였다. 진한 육향보단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스지찜은 국물과 함께 촉촉하게 먹어야 제맛이다. 고추냉이와 간장 소스를 살짝 찍어 먹으면 짭짤하게 간이 잘 맞는다. 전통주에도 관심이 많은 최 사장은 스지찜과 잘 어울리는 술로 가평소주와 우렁이쌀 청주를 추천했다. 스지찜의 녹진한 맛을 깔끔하게 내려주기 좋다.
이를 지(至), 편안할 안(安).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묻는 동훈의 마지막 대사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깊어가는 가을날, 편안한 저녁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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