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희 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진 마디마다 늘 소설가 황석영의 문장이 있었다. 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을 파헤친 <객지>부터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린 <장길산>, 분단의 상처를 보듬은 <손님>과 노동의 역사를 잇는 <철도원 삼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펜 끝은 언제나 시대의 가장 뜨거운 정중앙을 향해 있었다. 그런 그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내놓은 신작 <할매>는 그가 평생 일궈온 문학적 영토를 훌쩍 넘어선, 낯설고도 경이로운 지점에 닿아 있다.
릴게임갓 ▲ ?황석영 장편소설 <할매>
ⓒ 창비
바다이야기2소설 <할매>를 처음 펼치면 독자는 다소 어리둥절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서두를 여는 것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인간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1장에서는 개똥지빠귀 새가, 2장에서는 어린팽나무가 화자로 등장한다. 드디어 3장에 이르러 사람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그는 이내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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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릴게임 기서 작가는 리얼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바닷가에서 죽은 몽각의 시신을 칠게가 먹고, 그 칠게를 다시 도요새가 먹으며 비상하는 장면은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역사를 주도한다는 오만을 내려놓고, 죽음조차 다른 생명의 에너지가 되어 흐르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초기작부터 이어
바다신2게임 온 민중 리얼리즘이 이제는 인간을 넘어 만물을 품는 '생태적 철학'으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600년 된 팽나무 '할매'가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삶을 가꾸는 풍경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근원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자연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던 시절의 신성한 공존
릴게임신천지 을 증명한다. 600년이라는 영겁에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고목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 세상은 얼마나 소란스럽고도 애틋한 것인가. 작가는 이들의 교감을 통해 우리가 훼손해온 자연이 사실은 우리와 한 몸이었음을 나직한 목소리로 꾸짖고 또 위로한다.
<할매>는 한 번 슥 읽고 덮기엔 그 결이 너무도 촘촘하고 깊다. 첫 번째 읽을 때 보이지 않던 미물들의 움직임이 두 번째 읽을 때 비로소 서사의 주역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인간의 역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자연이라는 더 큰 품속에 배치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 숭고하게 만든다.
군산 하제마을의 사라져가는 갯벌과 팽나무를 기록하는 그의 필치는 세밀하면서도 단단하다. 이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거장의 집요한 노력이다. 적어도 두 번은 정독해야 비로소 작가가 그려놓은 거대한 생명의 지도가 독자의 마음속에 온전히 안착하게 된다.
무엇보다 독자를 가장 깊이 감동시키는 것은 작가 황석영 작가의 태도 그 자체다. 최근 금관문화훈장이라는 문화예술계 최고의 영예를 안고도 그는 "이제야 내 문학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일기라도 쓰겠노라며 펜을 놓지 않는 그의 집념은 팔순의 나이를 무색하게 만든다.
평생을 '영원한 현역'으로 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깨고 나가는 그의 도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장엄한 문학적 사건이다. 그는 여전히 현장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결국 <할매>는 우리 모두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연결의 고리를 지키는 것이 곧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임을 보여준다. 우리 시대의 거장이 남긴 이 따뜻하고도 웅장한 '생명의 일기'를 통해, 독자들 역시 잠시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600년의 고요한 시간 속에 머물러 보기를 권한다.
거장의 문학적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우리는 그가 틔운 새로운 싹을 목격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