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기자]
추위가 가시는가 싶더니 2월 27일 아침부터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강진에서 1박 후 서둘러 진도 '운림산방(雲林山房)'에 들어서니, 잘 다듬어진 정원 잔디 밑으로 봄비가 스며든다. 비가 멈춘 듯하더니 뒷산으로 물안개가 자욱하다. 소치 허련(1808~1893)이 즐겼던 한 폭의 산수화 같다.
관람객도 듬성듬성 보인다. 운림산방 앞뜰엔 해치 두 마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오늘 내린 봄비가 봄을 알리는 신호일까. 봄비에 젖은 자주목련 새순이 속살거린다. 수백 년 묵은 매화나무 일지매(一枝梅)도 뒤질세라 붉은 꽃망울을 보인다.
바다이야기합법 매화나무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다. 봄기운에 물든 연못가 무지개다리 홍애교 역시 손님맞이에 들뜬 기색이다. 운림산방의 기둥엔 스승 추사 김정희 글씨체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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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과 나물이고, 가장 훌륭한 모
골드몽 임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손녀와 함께하는 모임이라는 뜻이다. 소치 허련은 스승이 즐겨 그렸던 그림뿐만 아니라 스승의 모든 것을 닮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걸지 않았을까.
소치 허련 선생이 역사 속에서 깨어나 묵객들을 맞이할 듯이 방 안에 앉아 있다. 일행은 운림산방 마루에 앉아 봄비에 젖은 연못 주변을 둘러본다. 수채화 물감이라도 풀어 물들이
야마토게임다운로드 고 자연을 벗삼아 시라도 한 수 읊어보고 싶다. 도서이정(圖書怡情)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니 마음이 즐겁다는 말이다.
운림산방의 정서에 젖은 채 미술관에 들어선다. 소치 허련 화백의 5대에 걸친 운림산방 화맥(畵脈)으로 후손들로 이어진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치는 진도에서 태어난다. 성년이 된 후 해남 초의선사에게 학문과 인
바다이야기 격을 수양하고, 녹우당 공재 윤두서 그림을 보고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제 240호)과 <노승도>를 보고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는 공재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에 눈을 뜬다. 윤두서의 작 <격용>을 보고 <용>을 모사하기도 한다.
그 후 소치 허련은 초의선사 추천으로 추사 김정희(1786~1856) 문하
릴게임사이트 에 입문하여 본격적인 남종화 풍의 그림을 배운다. 추사는 소치에게 한양의 자신 집에 머물게 하면서,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친다. 전남대 미술사학자 이선옥 교수에 따르면, 소치 허련은 19세기 당대 추사가 인정한 몇 안 되는 화가로 부상한다. 허련에게 김정희는 최고의 스승이고, 김정희에게 허련은 특별한 제자였다.
그 무렵 '소치(小痴)'라는 아호도 스승 추사 김정희로부터 받는다. 경술 문장에 관한 해동 제일로 소문난 추사 김정희는 제자 소치 허련의 솜씨만큼은 아낌없이 칭찬한다. 혹자는 운림산방의 소치를 묵신(墨神)이라고까지 말한다.
어느 날 추사는 압록강 동쪽에서 소치를 따를 자가 없고, 자신의 그림보다 낫다고 말할 정도이다. 소치 허련 자신도 <화법유장강만리(?法有長江萬里)>라고 했다. 그림의 법칙은 장강 만 리의 유장함이 담겨야 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그 글씨 앞에 서서 한참 바라보았지만, 그의 깊이를 가늠할 길이 없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목과 담채로 여백의 미를 살려 남종화 화풍을 즐겼던 소치 선생의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그림 속 소치 허련 선생의 '도서이정(圖書怡情)'의 정신을 새겨본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소치가 붓으로 말했던 화두를 눈으로 담아 읽어 보려 하지만, 한계를 느낀다.
소치 허련 미술관에서 필자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단연 운림산방을 소재로 그린 <선면산수화(扇面山水畵)>이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에게 지베르니의 <수련>이 있다면, 소치 허련에겐 운림산방의 <선면산수화>가 있을 정도이다.
소치 선생의 대표작답게 운림산방의 실경을 남종화로 재해석한 그림이다. 그림 위로는 추사체로 된 발문이 빼곡하다. 운림산방 입구에서 보았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림 중앙에 보이고, 동백나무와 연못으로 이어진 무지개다리 홍애교(紅愛橋)가 뽐내고 있다. 다리 위로 건너고 있는 선비는 소치 허련 자신이 아닐까.
▲ ?운림산방
ⓒ 김병모
미술관을 나와 운림산방 뒷산을 무심결에 보니 운무가 여전히 산을 휘감고 있다. 소치 허련 선생이 역사에서 깨어난다면 화선지부터 찾을 법도 하다. 돌아서기 아쉬워 운림산방 마루에 앉아, 잘 정돈된 연못을 다시 바라본다.
조선 선비들이 연못을 만들 때 선호했던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형태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연못 중앙 둥근 섬에 수령을 알 수 없는 배롱나무가 금빛 색깔로 뽐내고 있다. 소치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라고 한다. 배롱나무꽃이 활짝 핀 8월쯤에 운림산방의 풍취를 다시 한번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