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햄넷'의 한 장면. 아그네스는 아들 햄넷의 죽음에도 무심하게 가족을 떠난 남편 윌(셰익스피어)이 실은 희곡을 통해 아들을 무대 위에서 살려냈음을 알게 된다. 11세 아들을 잃고 4년 뒤 '햄릿'을 발표한 셰익스피어 실화에 기반한다. 유니버설픽처스
19분. 작년 제78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센티멘탈 밸류'를 향해 쏟아진 기립박수의 시간이다. 칸 기립박수가 형식적으로 의례화됐고 배급사 포스터용 홍보문구로 소비된다는 비판도 있지만, 예술가를 향한 관객들의 존중과 예우의 표현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19분'은 경이적인 기록이
체리마스터모바일 었다. 10분만 넘겨도 극찬이란 평가가 나오는데 '센티멘탈 밸류'의 기립박수 시간은 두 배에 달했고, 그 결과 2등상인 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센티멘탈 밸류'가 한국에서 개봉했다. 예술영화임에도 입소문을 타며 호평을 받고 있다. 상처로 얼룩진 가족의 상처, 그리고 회복력을 질문하는 영화인데 공교롭게도 지금 이 순간 극장가에선 '가족
무료릴게임 의 상처, 그리고 예술'을 질문하는 또 다른 작품 '햄넷'도 개봉해 예술영화 관객을 쌍끌이 중이다. '가족의 상처는 지워질 수 있는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가'를 질문한 두 작품을 극장에서 살펴봤다. '햄넷' 주인공 제시 버클리, '센티멘탈 밸류' 주인공 레나테 레인스베는 3월 15일(현지시간) 개최되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릴게임꽁머니 함께 오르기도 했다. 클로이 자오의 신작 '햄넷'을 관람하기 위해선, 우선 '무너질 준비'를 마쳐야 한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돌이킬 수 없이 객석은 붕괴되고, 스크린의 파동과 심호흡 끝에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서다.
죽은 아들을 두고 떠난 셰익스피어
릴게임신천지 때는 1596년, 주인공은 아그네스. 그녀는 마을에 새로 온 라틴어 교사 윌(훗날의 셰익스피어)과 사랑에 빠져 혼인한다. 첫째 수재나를 낳은 뒤 윌은 일상의 파괴와 창작 열의를 이기지 못해 극단이 몰린 런던으로 향한다. 윌과 아그네스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윌은 창조하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견딜 수 없었고, 그런 윌을 아그네스는 이해하며 보내준다. 그
바다이야기디시 때 아그네스는 쌍둥이 남매를 임신 중이었다. 둘째 딸 주디스와 셋째 아들 햄넷이 아그네스와 윌의 새 가족이 된다.
유럽에 역병이 돌면서 아그네스는 죽음에 저항하지만 결국 막내 햄넷을 잃는다. 남편 윌은 곁에 없었다. 아들의 죽음 직후 도착한 윌은 절규하다가도 이제 런던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아그네스를 다시 떠난다. 아그네스는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둘은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던 중 런던에서 소식이 들려온다. 윌의 새 희곡이 런던에서 초연될 예정이며 영국 전체가 윌의 신작 소식으로 가득하다고. 원망하던 남편이 집필해 무대에 올리는 새 희곡의 이름은, 하필 세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인 '햄넷'이었다. 우리가 '햄릿'으로 아는 바로 그 희곡으로 당시 햄넷(Hamnet)과 햄릿(Hamlet)은 혼용됐다고 한다.
참척의 슬픔을 다루는 아버지로서의 레퀴엠이리란 아그네스의 예상은, 그녀가 연극을 관람하기 시작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연극을 관람하던 아그네스는, 윌이 죽은 아들과 아직 살아 있는 자신(아버지)의 위치를 극 속에서 바꿔 자신부터 먼저 죽이고 이 희곡을 씀으로써 햄넷을 무대 위에 영원히 살려냈음을 깨닫게 된다. 윌은 슬프지 않았던 게 아니라 울지 않았을 뿐이었다. 윌은 햄넷을 애도하면서도, 동시에 인류사의 영원한 걸작을 남기고 있었다. '햄넷'은 매기 오패럴의 2020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으며, 이 소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1세 아들 햄넷을 전염병으로 잃고 4년 뒤 '햄넷(햄릿)'을 발표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 밖의 내용은 모두 창작된 것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예술은 사실의 재현이나 반복에서 오지 않고 사적인 상실의 잔해를 재조합한 뒤 비로소 이룩되는 것이란 깨달음을 준다.
영화 '센티멘탈 밸류'의 한 장면. 가족을 등진 영화감독 아버지가 자신에게 배역을 맡기자 배우 노라는 격분한다. 그린나래미디어
가족사는 예술의 재료가 될 수 있나
요아킴 트리에르의 신작 '센티멘탈 밸류' 역시 가족·상실·예술이란 키워드가 감지된다. 주인공은 노라. 이제는 한물간 영화감독인 아버지 구스타프의 영향으로 배우의 길로 들어선 노라는 심각한 무대공포증을 겪고 있다. 그러나 무대에 서서 첫입을 떼기만 하면 광기에 가까운 연기력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가운데 모친의 사망으로 장례식이 열린다. 그날, 노라 자신과 동생 아그네스(공교롭게도 이 영화의 배역 이름도 '햄넷' 주인공과 동명이다)를 떠났던 아버지가 찾아온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알코올에 의지하며 가족을 버리다시피 등졌던 구스타프는 헤어진 아내의 장례식 직후 노라에게 두툼한 각본을 내민다. "스스로 생을 등진 내 어머니 카린(노라의 할머니)에 관한 내용이지만, 실은 노라 너를 위해 쓴 각본"이라며 노라가 영화 주연으로 참여해달라고도 요청한다.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가 가족사를 재료 삼아 영화로 소비하려 든다는 생각에 노라는 격분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살한 어머니 카린'의 배역을 '소원했던 딸 노라'에게 요청했던 구스타프는, 딸의 거절 후 다른 배우를 섭외했고, 심지어 가족이 머물렀던 집에서 촬영을 하려 한다. 투자조차 받지 못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영화는 넷플릭스 투자를 받았고 집에 도착한 주연배우는 당대 최정상급 할리우드 스타였다. 아버지가 이 영화를 왜 만들려고 했던 건지, 단란했던 가족의 공간에서 촬영하려는 의도가 뭔지 알지 못해 노라는 혼란스러워한다.
'센티멘탈 밸류'의 원제는 노르웨이어 '아펙숀스베르디(Affeksjonsverdi)'로 라틴어 'affectio(감정적 상태)'와 'verdi(가치)'에 어원을 둔다. '시장가격과 무관하게 애착 때문에 생겨나는 가치'를 뜻한다고 한다. 가족이 4대째 살아온 집이나, 엄마가 쓰던 꽃병은 시장가격은 낮더라도 구성원에겐 결코 값을 매길 수 없는 애착의 대상이다. 또 가족이 겪은 상처를 예술화하려는 구스타프 역시 가족사라는 사실을 넘어 정서적인 가치를 붙들고자 한다.
어머니 카린의 자살과 딸 노라의 누적된 상처를 예술화하려는 구스타프의 의지는 시장 논리로만 환산되지 않는다. 구스타프의 영화는 결국 만들어지지만 결말에 이르러 많은 변형을 거치는데, 다행인 점은 구스타프가 상처를 상업적으로 '팔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견디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술의 탄생을 사유케 하며, 이러한 주제는 '햄넷'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영화는 모두 가족 균열의 틈을 행복한 눈물로 채우며 그 위에 '이해'라는 꽃을 틔우며 끝난다. 극장이 위태롭다 해도 이런 영화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