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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지환어 (25-08-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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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든 엄마 돌아온다는 소식 들었어요?”
브런치 모임이 끝난 뒤, 제니 엄마가 던진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여자들이 도로 주저앉았다.
“곧 귀국할 거라고 새벽에 장문의 글을 올렸던데. 좀 전에 인스타 보니까 또 지워졌더라고요. 헨리 엄마, 뭐 아는 거 없어요?”
여자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들 이든 엄마와 내가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 대해 부인하지도, 해명하지도 않았다.
이든은 불세출의 영어 천재로 불리는 아이였다. 전국에 70군데 체인이 있다는 영어유치원에서 서울도 equity
아닌 경기도 후미진 동네 아이가 테스트마다 종합 1등을 맡아 했으니 다들 그 엄마가 누군지, 비결이 뭔지, 한마디라도 섞어보고 싶어 했다. 그 여자가 지나가면, 다른 여자들이 옆 사람을 쿡 찌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여자야.”
처음 이든 엄마를 봤을 때 나는 생각보다 평범한 모습에 놀랐다. 아무리 경기도 북부야마토게임장
귀퉁이 동네라고 해도 영어유치원 주차장에는 외제차가 줄지어 서 있었고, 아이들 입성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엄마들의 허영심은 그 기관의 심장이었다. 그런데 간판스타라는 아이는 다 낡은 트레이닝복 몇 벌을 돌려 입었고, 아이 엄마는 자루 같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녔다. 나는 그 역시도 허영심이라고, 더 비틀어진 종류의 허영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집에서스카이라이프 주식
한참 떨어진 심리상담소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남편은 처음부터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것에 반대했다. 우리 형편에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럴지도.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 맞벌이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하루도 쉬지 못했으니까. 돌도 안 된 아이를 매일 어린이집에 열두 시간씩 맡기고 서울까지 출퇴근을 해야 했으니까. 최소한 둘은 낳고 매도원칙
싶었는데 하나로 만족해야 했으니까. 어쩌면 마음에 오기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낙오하지 않겠다는 오기, 한 가지쯤은 분에 넘치게 좋은 것을 가져보고 싶다는 오기, 피 같은 돈을 정말 의미 있는 데 쓰겠다는 오기.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고 3개월 즈음 지나자 아이는 영어 동요를 흥얼거리고, 집에서도 영어로 한두 마디 말을 하기 시작했다.ELW증거금
그토록 반대했던 남편도 결국 서서히 얼굴이 풀어졌다.
“내 말이 맞지? 이 시기 아이들은 언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고 했잖아.”
나는 의기양양하게 큰소리를 쳤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내내 입을 다물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 해가 다 지난 뒤였다. 원어민 담임은 한결같이 무심했고, 한국인 담임은 스물두 살의 어린애였다. 그들은 내게 그 사실을 아직까지 몰랐느냐고 도리어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나는 남편에게 사실을 말하는 대신 아무도 모르게 직장 근처의 심리상담소에 아이를 데려갔다. 집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였고, 이름이 알려진 곳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이든과 이든 엄마를 맞닥뜨렸을 때 어지간히 놀랐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희끼리 유치원 놀이터에서 몇 차례 함께 논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이든 엄마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먼저 그들의 차례가 되어 상담실에 들어갔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구역의 상담실로 안내되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여러 심리 검사를 했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안정시키라는 조언을 들었다.
상담소에서 나왔을 때, 이든과 이든 엄마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아래층에 돈가스 맛집이 있다고, 시간 괜찮으면 밥이나 먹자고 했다.
그날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이든 엄마였다. 이든이 긴장할 때마다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유뇨증을 앓고 있다는 것, 자신의 커다란 배낭 안에는 아이의 여벌 옷과 팬티가 두 벌 이상 들어 있다는 것, 아이가 조금만 찝찝한 느낌이 들어도 옷을 갈아입으려 해서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는 내게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 숨김없는 그녀의 모습에 나 역시 경계가 허물어졌다.
“저희 애는 유치원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대요. 오늘 함구증이란 진단을 받았어요.”
“영유 그만두라고 하죠?”
이든 엄마는 피식 웃었다.
“말이 쉽지.”
그날부터 이든 엄마와 나는 매주 심리상담소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이든 엄마는 영어 공부법에 대한 정보를 내게 아낌없이 나눠줬다. 매달 치르는 레벨 테스트에 대비하는 법, 시기별로 읽어야 할 원서, 그에 맞춰 풀어야 할 문법 문제집까지 조목조목 짚어줬다. 어떤 시간대에 집중력이 높고, 어떤 방식으로 동기 부여가 되는지, 어떤 식으로 칭찬하고 또 훈계해야 하는지 세심한 지도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이든의 최종 목표는 빅3 영어학원 진학이라고 했다. 거기서 떨어지면 지구에서 떠나야 한다고, 그녀는 반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친구 엄마와 그토록 친밀해진 경험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도 유행하는 영어 교구, 파닉스 교재, 영어 도서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첫날 이후 다시는 아이들의 병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치러야 하는 작은 대가, 안고 가야 할 핸디캡으로 여겼다. 징징대지 말자고, 이든 엄마는 내게 말했다.
“대치동에서는 아이랑 키즈카페 가는 대신 놀이치료 하러 심리상담소에 간대요. 이곳이 새로운 개념의 키즈카페인 거죠.”
이든 엄마에게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말장난 혹은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주 심리상담소에 아이를 데리고 가면서, 점점 더 그 말에 의지하게 되었다. 아이의 함구증은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만큼은 못 말리는 수다쟁이였기 때문에 남편은 끝내 진실을 알지 못했다. 대신 아이의 테스트 점수는 매달 놀랍게 향상되었다. 나는 여자들의 새로운 관심 대상이 되었다.
졸업식을 얼마 앞두고 이든이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떠났을 때, 유치원에서는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이든 엄마의 시댁이 유명한 외식 업체라는 말,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는 말, 결국 번듯하게 손자를 키워낸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지사로 가게 된 거라는 말, 이든이 미국 영재원에 합격했다는 말, 그 아이는 하루 다섯 시간도 자지 않는다는 말, 단어 암기 개수를 채우지 않으면 엄마가 아이 밥도 안 준다는 말. 그 말들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실은 뭘까? 나도 잘 몰랐다. 다만 빅3 입학시험이 한창이던 작년 연말 무렵 그녀가 조금 늦게 상담소에 나타났던 날이 있었다. 평소처럼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다. 유난히 침묵이 길었던 그날 식사 막바지 즈음 그녀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었다.
“아무래도 상담소를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아이 예민도가 점점 높아져서, 시험 성적에 자꾸 영향을 미치네요.”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독해 문제집 이야기를 꺼냈다. 그로부터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든은 상담소는 물론 유치원에서도 떠나버렸다. 그녀는 나에게도 한마디 말조차 남기지 않았다. 단체 채팅방에 ‘이사 갑니다. 다들 건강하세요’라고 짧게 쓴 한 줄이 전부였다. 나는 그것이 섭섭하지 않았다. 우리는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었다. 기쁨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과거라든지 꿈이라든지, 마음의 저변에 있는 이야기는 나눠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커리큘럼과 레벨 테스트, 커트라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절박한 것이었으나, 결코 그 이상으로 확장되지는 않았다. 놀이터에서 한나절 놀고 헤어지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서로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브런치 모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나는 휴대폰으로 이든 엄마의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보았다. 미국 전원의 이층 주택, 깨끗하고 검소한 부엌, 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 이든의 뒷모습이 나란히 게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샅샅이 훑듯 바라보았고, 다음 순간 빠르게 화면을 꺼버렸다. 길에는 아이들이 없었고, 아이들의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거리에는 햇빛만 번들거리고 있었다.
뛰어난 성적 못받으면 고꾸라진다는 불안감 욕망의 숨겨진 이름
■ 작가의 말
“키즈카페라는 공간이 화려하고, 밝고, 안전한 느낌을 주잖아요. 그런데 경쟁이 치열한 학군지에서는 반대로 그 안에서 아이들이 외롭고 어두운 감정들을 견디고 있어요. 거기선 키즈카페가 아이들이 놀이치료를 받는 ‘심리상담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거든요.”
정한아 작가는 소설 제목을 ‘키즈카페’로 붙인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무거운 현실이 도사리고 있는 키즈카페는 ‘7세 고시’가 일상이 된 학군지의 민낯이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공부하라”고 채찍질하며 아이들에게 큰 짐을 지우는 학부모들의 욕망은 어디서 올까. 정 작가는 “경쟁이 너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어렸을 때부터 뒤처지면 끝이라는 위기감, 아이들이 뛰어난 성적표를 받아들지 못하면 언제든 바닥으로 고꾸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야말로 욕망의 숨겨진 이름”이라고 말했다.
영어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의 이상행동 때문에 한 심리상담소에서 만나게 된 이든 엄마와 헨리 엄마는 이 같은 불안감을 공유하는 사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끝내 자신들의 내밀한 고통을 공유하는 대신 영어 성적 잘 받는 방법만 공유하며 피상적인 관계로 남기를 택한다. 정 작가는 “상처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심리적으로는 거리를 두면서 정보는 절박하게 주고받는 것이 이 시대 아이 엄마들의 풍경”이라고 했다. 정 작가는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대표작으로는 ‘친밀한 이방인’ ‘3월의 마치’ 등이 있다. 문학동네작가상, 한무숙문학상, 심훈문학상 등을 받았다.
인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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