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6.3 대선을 앞두고 지지 후보를 정하는 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다. 진보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 방침을 두고 있음에도 양경수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 일부가 '더불어민주당 지지' 안을 고수하면서 갈등이 불거진 것. 조직 일각에서는 양 위원장 등이 진보당 당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집행부가 특정 정당의 방침을 민주노총으로 끌고 와 독자적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지난 20일 회의를 열고 6.3 대선 방침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대선 후보 방침으로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안이 제출됐으나, 집행부를 비롯한 일부 임원들이 민주당 지지 안을 고수하면서 입창 차를 좁히지 못했다. 오후 1시 시작한 회의포메탈 주식
는 밤 10시 40분까지 공전을 거듭했다.
결국 '논의가 공전하니 차라리 표결로 정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양 위원장은 '선거 방침을 표결로 정한 선례는 없다'며 거부했다. 최후로 '표결 여부를 정하는 표결을 하자'는 제안만 받아들였고, 성원 33명 중 14명의 동의로 과반이 되지 못하면서 회의는 그대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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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은 민주노총 내에서 민주당 지지 안을 추진한 세력의 핵심 인사다. 내부 사정을 아는 민주노총 관계자는 "진보정당 후보 지지 안을 반대하는 건 정치적 부담이 있으니, 표결에 부치지 않은 걸로 보인다"며 "집행부 안 외의 의견은 수용하지 않는 태도로 회의에 임했다는 게 내부 평"이라고 전했다.
한 중집위원은 이날 집행부에 "내란 세력 청파워스톡
산을 가장 원하는 게 민주노총이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인데, 내란 세력 청산하자고 친자본 우경화하는 이재명을 지지하자고 하는 건 부끄럽다"며 "우리가 민주노총 지도부를 천 년 만 년 하나. 30년 동안 노동자정치 세력화를 위해 헌신한 선배들을 이어받아 잠시 하는 것일 뿐인데,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부끄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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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위원장이 21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민주노총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불편한 의제 빼고 협약 시도한 양경수 집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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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지난 2023년 77차 대의원대회를 통해 '진보정당을 포함한 진보 정치 세력들과 결집한 힘을 만들어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추진한다'는 정치 방침을 확정했다. 하위규칙인 선거 방침은 정치 방침의 테두리 내에서 결정된다. 즉 진보정당 후보 지지가 선거 방침의 골자다.
'양경수 집행부'의 민주당 지지 안은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원칙에 위배된 '보수정당 지지' 문구를 넣는 안이었기 때문이다. 집행부는 지지 대상에 진보정당 후보뿐 아니라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 문구를 함께 넣는 안을 추진했다. '진보정당과 연대연합을 실현한 후보'란 결국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지난 9일 지지를 선언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칭하는 것이다.
양 위원장이 추진한 정책 협약 형식도 논란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일 △노동기본권 △사회공공성 △사회대개혁 등 3대 의제에 대한 16개 과제를 21대 대선 요구안으로 정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재벌·수출 중심 경제구조 개혁, 윤석열 정부의 감세 원상 회복, 공적 영역 민영화 금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모두 포함한 사회구조 개혁안이다.
집행부는 그러나 이들 16개 과제 중 노동기본권 분야 6개 과제만 포함된 축소된 정책 협약을 정당들과 체결하기 시작했다. 당시 집행부는 민주노총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과의 정책 협약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내부에서 '민주당과 협약을 성사하려 민주당에 불편한 개혁 의제는 다 뺐다'며 '이게 사회대개혁이냐'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과의 정책 협약은 지난 15일 열린 중집 회의에서 부결됐다. 찬반 양론이 팽팽한 끝에, 집행부는 '내부 의견이 모이지 않으니 정책 협약은 하지 않겠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5일 뒤 선거 방침 결정은 무산됐다. 다음 중앙집행위 회의는 대선 후에 열린다. 결국 민주노총은 대선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선거를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진보당 방침이 왜 민주노총을 흔드나"
민주노총 조합원 1400여 명은 지난 20일 '정치방침에 따른 진보정당 지지 및 대선방침 확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민주노총 집행부에 전달했다. 연서명을 모았던 이장우 전 울산대학교병원 분회장은 지난 17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선거 방침은 결정하고 말게 없다. 그냥 정치 방침에 따라 후보군을 정하면 그만"이라며 "이걸 정하지 않고 선거 대응도 못 하고 이리 시간만 끄는 건 집행부의 직무유기"라고 했다.
이 전 분회장은 "진보당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노총 위원장과 집행부가 진보당 당원이고, 집행부의 정파적 이해관계가 민주노총을 흔들면서 민주노총의 의사결정이 왜곡되고 있다"며 "어느 정도의 재량을 발휘하는 건 문제없지만, 지금 모습은 정치 방침까지 어기고 직무를 유기하는 등 재량범위를 넘어선 패권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진보당 내 특정 정파가 진보당의 방침을 민주노총에서 적용하려 한다는 지적은 민주노총 내에서도 널리 퍼진 시각이다. '진보당 방침 인입' 문제로 촉발된 단적인 예가 지난 9일 있었던 고미경 전 사무총장 및 민주노총 기획실장, 총무실장, 교선실장, 교선실원 2명 등 6인의 일괄 사퇴 사태다. 이들의 사퇴는 김재연 대표의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 직후 벌어졌고, 사퇴한 이들은 진보당 내에서 민주당 지지를 반대하는 진영이었다. 진보당 내의 노선 갈등이 민주노총으로 번진 형국이다.
집행부 노선을 반대하는 중집위원 16명은 지난 19일 따로 성명을 내고 "노동자-서민 편에 선 단 하나의 후보, 유일한 진보 대통령 후보 기호 5번 권영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민주노총이 우클릭하는 중도 보수 정당에 올라타는 대신, 너른 전망을 가진 진보 정치의 씨앗을 다시 심도록 호소하겠다"며 "진보 정치의 역사는 보수 정치의 '사표론'과 '비판적 지지'에 맞서온 돌파의 역사이며, 보수 정치에 기대는 ‘차악의 정치’를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올바른 진보 정치의 실현뿐"이라고 선언했다.



▲5월 20일 발표된 금속노조 성명서. ⓒ금속노조



집행부 "정치 방침 위배 아니고, 진보당 전혀 무관"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당 지지 안이 정치 방침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태환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19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총연맹의 정치 방침은 진보 정치와 진보정당을 강화하자는 방향성으로, (민주당 지지 안이) 진보정당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이번 대선은 통상 5년 마다 오는 선거가 아닌 내란·계엄을 거친 특수한 상황이므로, 내란 세력에 대한 압도적 승리에 진보정당이 복무해야 한다는 정세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정책 협약 대상을 왜 노동 분야로만 제한했느냐'는 물음엔 "협약 내용의 양도 많고 노동기본권에 더 선명히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며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진보당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이 수석부위원장은 "집행부의 정세 인식이 그와 유사한 것이지, 진보당과 관련된 것이 전혀 아니"라며 "당의 결정에 민주노총이 좌지우지된다는 해석은 지나치게 과하고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민주당이 진보정당이 아닌 것은 맞고 그 한계도 분명하나 광장연합(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에 참여하는 측면에서, 광장연합이 그 한계를 바로 잡아나갈 수 있다"며 "향후 민주당에 개혁 약속을 지키라는 압력도 행사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현재 '범보수 빅텐트'를 형성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지지자 모임, 박근혜 지지자 모임 등이 이 후보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고, 권오을 전 새누리당 의원,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 및 김용남 전 개혁신당 의원, 김상욱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재명 후보 선대위에 합류했다. 이재명 후보 10대 공약엔 부자 증세, 포괄적 차별금지법, 공공부문 민영화 금지, 재벌 중심 경제구조 타파 등의 진보 개혁 과제는 배제돼 있다.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중집위원)은 21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대선 TV토론에서 권영국 후보가 보였다. 권 후보가 없었다면 광장에서 나온 성찰적 요구들, 특히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등의 의제는 모두 실종됐을 것"이라며 "이게 진보 정치이자 진보의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집행부가 대선 방침을 정하지 않은 건 지난 30년 민주노총의 진보정당 중심 정치 세력화 운동이 이젠 끝났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손가영 기자(bada@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