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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여기 구름다리 진짜 멋있어요!"
백화산 구름다리에 오른다. 발밑으로는 소나무 숲이 바다처럼 출렁거리고, 북쪽으로는 가로림만의 복잡한 해안이 만든 아름다운 절경이 이어진다. 내륙으로는 서산까지 보일 정도로 훤하다. 무엇보다도 북적거리는 사람 한 명 없이 이를 고요하게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산 바로 아래에서 자고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간직할 수 있는 순간이다. 백패킹하며 걷는 동서트레일의 매력이다.
국내 최초, 최대 주택금융공사 전세자금대출 의 해양생물보호구역 보는 구름다리
동서트레일 3~4구간 이어 걷기 2일차가 시작됐다. 태안의 진산, 백화산 아래에서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버너로 뜨겁게 데운 온수를 마시자 새벽 공기에 으슬으슬해진 몸의 출력이 곧바로 쭉 올라간다.
2일차 일정은 백화산에 오른 뒤 동서트레일 3구간을 따라서 몽산포항까지 잇 도치 는다. 산림청에선 3구간을 몽산포항~태안읍행정복지센터 약 16km로 잡아뒀는데, 이 구간에서 유일하게 야영과 취사가 가능한 곳이 끝자락인 몽산포항에 있다. 추후 정식 개방될 땐 야영지를 고려해서 구간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날 식량을 깔끔하게 비웠기에 배낭은 한결 가볍다. 몸도 적당히 풀리고 든든하고 따뜻한 끼니를 먹은 탓인지 농협 월복리 몸도 가볍다. 금방 자리를 정리하고 야밤에 제대로 보지 못했던 흥주사의 진면목을 본다. 절 앞을 당당하게 막고 선 은행나무가 경이롭다. 높이 약 20m로 흥주사를 지키는 사천왕 역할을 한다. 옛날 백화산 기슭에서 쉬던 노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부처님이 찾을 자리니 지팡이로 표시하라고 해서 막대기를 꽂아뒀더니 그게 자라서 은행나무가 됐다고 한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길은 왼쪽으로 빠진다. 여기서부터 충남의 아름다운 100대 소나무숲이 펼쳐진다. 대부분이 날씬하고 키가 큰 곰솔이다. 이 곰솔을 공중에서, 더 가까이 볼 수 있도록 트리워크가 설치돼 있다. 이 트리워크를 통해서도 백화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로 갈 수 있다. 살짝 발품이 더 들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
먼저 끝없는 계단, 계단이다. 호주성적 이어 망원경까지 설치된 전망대가 나온다. 그런데 영 조망이 시원치 않아 존재 이유가 의문스럽다. 자세히 보니 망원경에서 바라보는 곳 끝, 백화산 정상부에 빨간색 구름다리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러니 구름다리를 위한, 구름다리에 의한 전망대다. 이 구름다리는 2023년 3월 개통한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얼마나 구름다리가 멋지고 알리고 싶기에 이런 전망대를 세웠을까 싶어 궁금증에 걸음을 서두른다. 몽산포항까지 갈 길도 멀기에 내친걸음이다. 능선을 따라 편안한 길이 이어지다 길이 고꾸라지며 고개를 향해 내려간다. 길은 한참을 내려가다 냉천골 임도를 만나면서 다시 고개를 든다. 백화산 정상부에 다다르면 북쪽 구름다리로 빠지는 옆길이 나온다. 구름다리로 가는 길은 동서트레일에 해당하지 않지만, 안 가볼 수 없다.
백화산 구름다리. 튼튼해서 그리 아찔하진 않다.
데크를 따라 가자 빨간색의 거대한 구름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이 74m, 폭 1.5m에 지상높이 19m다. 합쳐 '봉봉대'라고 부르는 두 암봉 정상을 잇고 있다. 꽤 튼튼하게 지어져 아찔하게 출렁거리진 않는다. 그래서 짜릿함을 선사해 주진 못하나, 대신 탁 트인 전망은 보여 준다. 특히 북쪽 가로림만은 국내 최초, 최대의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그 의미가 더 각별하다. 멸종위기 해양포유류인 점박이 물범의 국내 최대 서식지라고 알려져 있다.
파노라마 조망에 정원처럼 깔끔한 백화산 정상
구름다리를 건너본 뒤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백화산 정상으로 오른다. 백화산白華山(285m)은 겨울에 눈 덮인 산봉우리의 모습이 하얀 천을 씌운 듯해서 이름 붙여졌다. 정상 일원은 태안의 성 중 가장 오래된 백화산성이 둘러싸고 있고, 조선 중기인 16세기 초부터 봉수대도 들어서 있어서 그런지 막힘없는 파노라마 조망이 펼쳐진다. 이곳의 봉수는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 안산, 강화, 인천을 거쳐 한양에 최종 전달됐다고 한다. 각종 문화재와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밭과 나무가 어우러져 하나의 예쁜 공중정원을 이룬 듯한 모습이다.
백화산 정상의 봉수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위에 서면 태안 읍내가 한눈에 보인다. 목적지인 안면도도 아스라하다.
태을암으로 걸음을 잇는다. 이곳에는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라는 국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 시대 마애불상이다. 6세기 말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보수 공사가 한창이라 가림막으로 둘러쳐 있다.
1920년대 자연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는 바둑판이 있는 망양대를 지나 태을암 경내로 들어서고 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능선부에서 군부대 방향 도로로 나가서 태을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우회하는 길이 정답이다.
다시 노선을 수정한 후 태안초등학교를 향해 성큼성큼 내려선다. 그동안 소나무 가득한 육산이었던 산의 풍모가 흠칫 달라진다. 마치 북한산처럼 매끈매끈한 화강암 암릉이 선 굵게 이어진다. 읍내로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보니 완연한 골산의 풍채를 지니고 있다. 겉은 골산인데 속은 육산인, 말하자면 외강내유의 산이다.
드디어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을 지나 학교 옆으로 내려서면 이정표가 끝없이 가리켰던 태안읍행정복지센터다. 여기서부터는 끝없이 '몽산포항'으로 나아가야 한다. 태안읍행정복지센터 건물 자체는 신식인데 바로 옆에 태안읍성이 껴안아주고 있는데다가 과거 태안현 관아 내 동헌건물인 목애당, 중국 사신이 휴식을 취하거나 방어사가 군사 명령을 내리던 장소인 경이정 등에 둘러싸여 있어 묘하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젠 태안 읍내를 내달린다. 길을 헷갈릴까봐 정성스럽게 골목마다 동서트레일 이정표와 산행 리본이 있다. 어떤 리본은 설치된 지 시간이 꽤 흘렀는지 벌써 색이 바랬다.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먼저 개통된 곳이기 때문이다.
태안서부시장과 음식점들을 지나며 주린 배를 채운다. 2일차는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지기에 전부 매식이다. 옛날 백패킹은 최대한 돈을 아끼는 것이 미덕이었다. 집에서 고기와 쌀, 라면 등을 가져와 밥을 해먹으면 아무래도 비용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백패커들의 생각은 다르다. 길이 살아 있으려면 결국 지역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최대한 지역 사회 소비에 기여하기 위해 지역 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지역 시장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려고 한다. 고향 땅을 조금 떼어내어 양보해 준 주민들에 대한 일종의 통행료이자 감사의 표시다.
꿈꾸는 산 있다는 포구의 빨간 등대로 종착지 삼아
읍내를 지나 남문리로 들어서는데 높이가 23m에 달하는 낙우송이 당산나무처럼 바로 옆 아파트보다 높게 솟아 있다. 무수한 논밭과 억새밭을 지나 해안에 닿자 거대한 갯벌이 덜컥 모습을 드러낸다. 왼쪽으로는 수차가 씽씽 돌아가는 염전이다. 드넓은 갯벌을 둑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갯벌이 그야말로 살아 숨 쉰다. 무수하게 많은 게와 망둥어들이 뛰논다. 그러다 발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화들짝 놀라며 게구멍으로 몸을 숨긴다.
읍내 구간이 끝나고 바다에 다다르면 주변이 바다와 갯벌, 염전과 논밭이 반복되는 독특한 경관으로 변한다.
갯벌을 보는 동안 저 멀리서 서서히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이 보인다. 이젠 서두를 때다. 둑을 지나 바닷물을 향해 마중 나간다. 여기서부터는 서해랑길 66코스와 거의 흡사하다. 도중에 살짝 우회하거나 질러가는 식으로 길이 달라지긴 하는데 몽산포항에서 만나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완벽하게 노선을 걷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둘 중 어느 것을 따라도 상관없다.
3구간은 논밭과 염전 사이로 난 길이 주를 이룬다.
그저 멀어만 보였던 바닷물도 바람을 타자 울컥울컥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길은 염전과 논밭 사이로 난 길과 마을 골목길을 번갈아가면서 이따금 해안 풍경을 보여 주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망이 탁 트이면서 저 멀리 거대한 건물을 보여 준다. 10년 넘게 폐허 상태로 남겨진 태안 유러피안 리조트다. 골조를 완성한 채 건설사가 부도가 났고, 이후 건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필 길은 스산한 폐리조트 곁을 지나게 돼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빨간 글씨들이 살벌하다.
수차가 쌩쌩 도는 염전.
이젠 몽산포항이 지척이다. 개 짖는 소리 가득한 마을을 통과한다. 생각보다 오르내림이 있지만 크게 어렵진 않다. 이어 2차선 도로 곁에 야자매트가 깔린 인도로 마지막 기나긴 오르막을 친다.
그리고 곧 몽산포夢山浦다. 꿈을 꾸는 산이란 이름이 포구에 붙은 것이 이채롭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1914년 인근 몽대리夢垈里와 동산리東山里에서 한 글자씩 따서 명명됐다고 한다. 아담한 해변 너머로 안목도에 삐죽빼죽 솟은 소나무들이 고요히 석양을 기다린다.
몽산포항의 마스코트인 빨간 등대. 동서트레일 구간에 속하진 않지만 몽산포항의 끝지점이라 다가가 봤다.
몽산포항에 있는 작은 해변에서 안목도(오른쪽 섬)를 바라본다.
그 소나무들처럼 석양을 기다리기로 했다. 작은 어선들이 각기 잡아온 물고기를 좌판에 쏟아놓고 판매하는 북새통을 지나 방파제에 오른다. 그리고 멀게만 느껴졌던 빨간 등대에 다가가 발치에 털썩 주저앉아 서해를 본다. 2년 후면 이 서해의 석양에서 동해의 일출까지 한 번에 연결된다. 최근 코리아둘레길을 빠르게 진행하는 이들은 도무지 잘 곳이 없어 버스정류장이나 공공화장실에서 쪽잠을 자는 해프닝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 길은 그럴 걱정이 없다. 내 집이 짐 안에 있다. 백패킹이다.
ⓒ동아지도 제공
산행길잡이
백화산 정상에서 태을암을 지날 때와 안기리에서 서해랑길과 합류할 때, 마지막 몽산포항 직전 마을길 이렇게 3곳만 주의를 기울이면 헷갈릴 일 없이 이정표가 잘 돼 있다. 태을암으로 가는 기존 등산로는 그대로 절로 이어지는데, 동서트레일은 중간에 도로 쪽으로 빠져서 절 위를 지나가듯 이어진다.
안기리와 몽산포항 직전 마을길 2곳은 이정표가 조금 미비해 지도를 잘 보고 가야 한다. 진산리에 있는 8km 태안읍행정복지센터 이정표도 방향이 거꾸로돼 있다.
교통
흥주사는 태안터미널에서 택시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낫다. 도착지인 몽산포항에서는 터미널로 가는 700~900번대 버스들이 약 1~2시간 배차 간격으로 운행한다. 다음 버스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약 3km 떨어진 송림공원 정류소로 가서 수시 운행하는 900번대 버스를 타면 된다.
맛집&기타 팁(지역번호 041)
백화산에서 내려서면 바로 태안읍내로 이어져 먹을 곳 천지다. 국일대반점(674-0313)은 정통중국요리를 표방하는 태안군 보증 모범음식점. 주요리 전에 전채로 스프를 내주는 것이 이색적이다. 짜장 7,000원, 삼선짜장 1만 원, 삼선짬뽕 1만2,000원. 탕수육 小 2만 원. 해산물이 풍부하고 너무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한가득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몽산포항에는 횟집이 여럿 있다. 나란히 붙어 있는 먹거리수산(672-2462), 민지네식당(674-0570), 몽대횟집(672-2254)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간다. 회 종류가 부담스럽다면 게국지(6만~7만 원), 해물칼국수(1인당 1만 원 수준)를 추천한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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