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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모의 논쟁적 공간'은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가 한국 사회의 논쟁적인 공간과 건축 이슈를 풀어내는 기획입니다.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부산 가덕도 전경. 남준기 제공
‘역사의 땅, 가덕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가덕도가 역사의 땅!’이라니,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산 가덕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신공항 건설 예정지로 알려져 있을 뿐, 어떤 곳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역사와 환경은 물론 경제성 유무와 무관하게,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한 정 전남대학교 대학원 치적 측면에서만 논의돼 왔기 때문이다. 최근에 현대건설이 안전성과 경제성을 이유로 공기 연장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사를 포기하면서,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경제성뿐 아니라, 기술과 안전의 문제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러나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역사와 환경 측면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폭력적이다. 미래세대의 삶에 우리투자증권 무책임한 현 세대의 셈법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되살린 역사와 환경 보존의 불씨
부산 가덕도 선사유적지 홍보 공원. 한국문물연구원
21.36km² 면적의 가덕도는 형용사 17.9㎢의 역사도시 서울의 사대문 안 면적보다 약간 더 큰 섬이다. 그러나 가덕도가 품고 있는 역사의 시간은 이보다 훨씬 크다. 고려시대 한양에 남경이 처음 설치(1067년)되면서 시작된 서울의 역사는 1,000년이 못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가덕도는 7,000년 전 고조선의 청동기시대로부터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삶을 품고 있는 별내지구대원 섬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어느 곳이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긴 시간을 품고 있을까? 거기에 더해 가덕도는 자연 생태계 또한 매우 잘 보존돼 있었다.
20여 년 전 동남권 신공항의 필요성이 제기된 후 추진과 무산, 재추진을 반복하다 지난해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가덕도신공항이 기정사실이 됐다. 그런데 지난 5월 신한카드연체해지 30일 대선을 앞두고 가덕도의 역사와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현대건설이 신공항 지반조성공사를 포기한다는 소식이었다. 현대건설이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추진하고 있던 터에 전해진 소식이라 파급 효과는 컸다.
부산 인구 400만 명 돌파가 예상되던 시기에 수립된 도시계획에서 제기된 동남권 신공항 이슈가 2018년 6·13지방선거, 2022년 20대 대선, 2024년 22대 총선 그리고 2025년 6월 대선을 거치면서 부산의 2030세계박람회 유치 실패에도 불구하고 가덕도신공항 건설에 대못이 박히는 듯했다. 가덕도의 역사와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력했고,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없었다.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여와 야를 불문하고 한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가덕도신공항 추진 일지.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런데 수의 계약의 주체였던 현대건설이 공기 연장을 요구하며 공사 참여를 포기한 것이다. 연이은 선거를 거치며 표심을 얻기 위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정책에 여야가 경쟁적으로 공약함으로써 역사와 환경 보존을 외치는 지역민과 전문가들을 좌절시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환경파괴의 선봉에 섰던 현대건설이 그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다.
현대건설의 공사 포기가 진정성 있는 포기인지, 2030엑스포 유치가 무산돼 명분이 없어졌어도 현 정부가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하에 공기 연장을 통한 공사금액을 부풀리기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계산이 있는지는 현시점에서 알 수 없다. 그러나 다 꺼졌다고 생각했던 역사와 환경 보존을 위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현대건설의 공사 포기를 계기로 많은 언론에서 무리한 공기 단축이 가져올 안전성과 경제성 없는 신공항 건설을 다루는 기사가 많지만,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역사와 환경 파괴에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다루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신석기시대 아시아 문화교류 거점
부산 가덕도 외양포와 마을 전경. 안창모 제공
가덕도는 8,000년 전 신석기 문화가 꽃피었던 곳임이, 가덕도 부산신항 공사 때 확인이 됐다. 2011년 가덕도 부산신항 건설 당시 준설토 투기 예정지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적은 국내 최대 규모로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가덕도 성북동과 장항마을, 그리고 동리산 구릉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초기의 집단 매장지와 거주지, 의례 유구 등이 확인됐다. 당시 유골 48구, 움집터 150여 곳이 확인된 것도 중요했지만, 동리산 정상에서 일본 규슈산 흑요석 등 외래 유물과 제사도구가 발견돼 가덕도 유적이 단순한 신석기시대의 역사를 넘어 동북아의 문화교류와 사회상을 연구하는 획기적 단서를 제공할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았다. 현재 발굴지에는 홍보공원이 조성돼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거주지와 묘역 등이 보존됐다.
한편, 고려시대 원과 함께 일본 정벌을 위해 설치한 봉화대가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가덕도는 군사 요충지로서 가덕진성, 천성진성을 비롯해 눌치왜성 등 임진왜란 당시의 유적이 남아 있다. 군사적으로 가덕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러일전쟁(1904년)으로 이어져 외양포 사령부와 포진지 그리고 국수봉 산악보루 등에 일본의 패권적 제국주의 증거 등 많은 근대유산이 남아 있고, 대항과 새바지에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군의 한반도 상륙에 대비해 만든 인공 동굴이 있다.
산림청에서는 ‘외양포 말길’을 러일전쟁 직후 일제가 대한해협의 군사거점 확보를 위해 원주민을 쫓아내고 진해만에 요새 사령부를 구축한 후 외양포 포진지와 산봉우리 관측소 산악보루까지 군수품 운반을 위한 갈지(之)자 형 말이 다니는 산길로 원형으로 잘 보존돼 있고, 강제 동원된 우리 민족의 희생이 서려 있는 역사체험 투어길로서 가치가 높아 국가산림문화자산 제2020-0009호로 지정한 바 있다.
부산 가덕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 안창모 제공
환경적 측면에서 가덕도는 연대봉(459m)과 국수봉(269m)으로 이어지는 산지와 해안에 동식물의 다양성이 풍부하고 양호해 국립공원 지정을 앞둔 부산 최고의 산지인 금정산에 버금가는 환경 생태적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러나 이미 북서쪽에 부산신항이 들어서면서 생태 환경이 위협받은 바 있다. 가덕도 전역에서 연중 볼 수 있던 상괭이가 부산 신항이 들어선 곳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상괭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재된 보호종이지만 그 생태계가 위협받기 시작했다. 가덕도의 역사 및 환경 유산은 신공항 부지에 포함돼 활주로와 터미널이 조성되면, 국수봉 등 3개 산을 깎아 확보한 163만 ㎥의 흙으로 해양생태 등급의 바다와 외양포가 매립돼 모두 사라지게 되며, 상괭이의 멸종은 물론 국수봉 철새 이동 통로에 대한 위협과 철새로 인한 비행기의 이착륙에도 심각한 위협이 우려된다.
개발시대에 발목 잡혀 만든 가덕도신공항
부산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가덕도 국수봉을 깎아 공항터미널을 조성한 모습이다.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홍보 영상 캡처
가덕도는 1989년 1월 1일 부산직할시에 편입됐다. 1989년 부산 인구는 약 385만7,312명으로 400만 명 돌파가 예상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1995년 389만2,972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시역 확장에도 불구하고 2025년 6월 기준 약 326만1,000명이다. 지난 30년 사이에 65만여 명이 줄었으니 무려 20% 인구가 줄어든 셈이다. 지금의 우리는 인구 감소 시기에 접어들었기에 부산 인구가 다시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만일 부산 인구가 다시 늘어난다면 인접 지역를 황폐화시키면서 흡수할 인구에 의존할 터이니, 중소 도시의 몰락을 전제한 부산의 성장만을 꿈꾸는 부산 인구의 증가를 상상하고 싶지 않다. 개발의 시대 논리에 발목이 잡혀 우리의 이웃과 후속 세대의 삶과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확실한 가덕도신공항의 정치 논리가 막춤을 추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동북아 최대의 유적지를 훼손시킨 사례가 있다. 춘천 중도의 청동기(고조선) 유적이다. 1980년대 국립박물관 조사를 통해 중도에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와 철기시대에 이르는 고고학적 발굴 사상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 동북아 최대 청동기 유적이 발굴됐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사업 주체가 돼 테마파크인 ‘레고랜드’ 측에 100년 무상임대 조건으로 개발했으나 약속했던 지역경제 활성화는 미미하고 세계적인 유적지는 훼손된 잿빛 미래의 현장이 되었다.
선사시대에서 고려와 조선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와 1등급 해양생태계와 환경을 품고 있는 가덕도가 제2의 중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고, 정부는 환경 생태 1등급으로 한반도의 전 역사를 품은 역사의 현장인 가덕도를 에코뮤지엄으로 만들어 부산의 가덕도를 넘어 우리 모두의 가덕도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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