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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한 청소년 문학 사이트의 멘토링을 담당하게 되었다. 청소년의 시는 뭐랄까, 과장을 섞어 표현하자면 신비롭다. 납작해 보이다가도 갑자기 깊이를 보여줄 때가 있고, 거칠게 전진하다가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섬세함을 흘리고 갈 바다이야기예시 때가 있다. 만지는 대로 모양이 바뀌는 찰흙 같은 구석도 있다. 피드백이 빠르게 흡수된 작품을 보면 시에도 성장기라는 게 있는 거 아닌가, 진지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무럭무럭 자라는 어린 시에 괜찮은 비료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겨나 은근한 두려움까지 느끼고 만다. (혹시 나 때문에 이 친구들의 시가 괴상해지면 어떡하지!)
시를 온라인릴게임 쓴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에게 권하는 작법은 '일단 묘사하기'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직언하지 말고 특정한 형태로 구현해 보기를 추천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으로 써서 보여달라고, 그 옛날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오늘 밤은 달이 예쁘네요'로 번역했듯이 본심을 감각으로 전환해 보라는 얘기를 하고 또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한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고백하건대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석적인 시 창작으로 여겨지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멘토라는 이름을 달고 마치 시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자니 사실은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일요일의 예술가·황유원 지음·난다 발행·176쪽· 황금성릴게임사이트 1만3,000원


"어느 시 잡지에서 메일로 송년회 초대장을 보내왔다/ 받는 사람에는 이미 죽은 시인과/ 이미 죽은 시인의 해설을 썼던 이미 죽은 평론가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고/ 나는 처음에는 그들의 무신경함에 혀를 차고 치를 떨다가/ 이윽고 그들의 사려 깊음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들은 죽은 바다이야기릴게임 사람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낸 것이었다"('초대장')
"생은 바삐 다른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무엇이라는/ 원래 존 레넌의 말은 아니지만 모두가 존 레넌의 말로 알고 있는 그 유명한 말을 떠올리며/ 생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실은 생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존 레논에게 마리화나를 처음 맛보여준 밥 딜런의 말처럼 갑자기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태어나느라 바빠지는 것이다"('생은 다른 곳에')
황유원 시인의 작품은 이런 나의 부끄러움을 키워준다. 시집 '일요일의 예술가' 속 시편들은 스케치하지 않고 성큼성큼 나아간다.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 시로 툭 튀어나온 다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뛰쳐나가 끝까지 가버린다. 에너제틱하고 구불구불하고 재미있는 말들. 이래도 시에 정답이 있고 방법이 있어? 직언하며 호탕하게 웃는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이 사람 말을 참 맛있게 하네, 사유를 기발하게 하네…… 쫓아가며 느끼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한 권을 읽는다.
어제는 멘토링을 하던 중 한 학생의 자기소개 문구에 시선이 갔다. '다~ 귀찮다. 세상에 쉬운 일이 뭐 하나가 없냐.' 미사여구를 동원해 고르고 고른 시행보다도 힘이 센 한마디가 거기에 있었다. 문장이란 참 묘하다. 잘 말하고 싶어서 애쓸 때보다 편하게 툭툭 말할 때 더 근사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근사한 건 알게 모르게 다 알아본다. '시 잘 쓰는 법' 같은 거 익히고 따지지 않아도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신이인 시인